[월간노동법률] 김대영 기자 = 신입 노무사들이 수습처를 구할 때 한 번씩 참고하는 자료가 있다. '블랙리스트'다. 노무법인들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가 담긴 자료다.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노무법인은 '블랙법인'으로 불린다. 신입 노무사들이 피해야 할 수습처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복수의 블랙리스트를 입수해 살펴봤다. 한 블랙리스트는 노무법인들을 평가하는 내용이 줄글 형식으로 정리돼 있다. 이 자료에는 주관적 평가나 감정적 표현이 많다. 또 다른 블랙리스트는 일종의 체크리스트에 가깝다. 노무법인별로 ▲근로계약서 작성 ▲최저임금ㆍ가산수당 지급 ▲연차휴가 여부와 주로 배우게 될 업무 내용이 적혀 있는 식이다. 노무법인 대표의 성향도 함께 기록돼 있다.

블랙리스트에 따르면 다수의 노무법인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수습노무사를 두고 있다. 민주노총 계열의 한 법률원도 이름이 올랐다. 최저임금조차 보장하지 않는 노무법인 또한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대다수 노무법인이 가산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관계법 전문가를 자처하는 노무사 업계가 오히려 노동법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모양새다.
 

노무법인 블랙리스트, 최악의 수습처 피하기 위한 수단

신입 노무사들은 블랙리스트를 통해 노무법인 처우나 실상을 공유하고 있다. 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신입 노무사들은 노무법인 등에서 수습기간을 거쳐야 정식으로 노무사 활동을 할 수 있다.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인 만큼 최저임금 지급 등 최소한의 대우를 보장 받으면서 업무 역량을 쌓을 수 있는 수습처를 찾는 게 중요하다.

실제 신입 노무사들은 수습처를 알아볼 때 블랙리스트 내용을 참고삼아 살펴본다. 최악의 노무법인인 블랙법인을 피하려는 것이다. 신입 노무사 A씨는 "수습처를 구하는 신입 노무사들 입장에서는 노동의 대가를 최대한 온전히 보장 받을 수 있는 곳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며 "수습기간동안 최저임금과 중식을 제공하고 기본적인 업무를 배울 수 있는 곳을 가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보장되지 않는 곳이 너무 많다"고 토로했다.

A씨는 "법인도 근로기준법이나 최저 근로조건을 준수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며 "최저조건을 준수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블랙리스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사히 수료기간을 마치기 위해 블랙법인을 가급적 피하려는 심리도 작용한다. 신입 노무사 B씨는 "우리는 수습기간을 수료해야 직무개시를 할 수 있는 '을'이다 보니 (블랙리스트로) 노무법인 대표들의 성향을 알아본다"며 "수습기간 외에는 배울 기회가 없어서 (일을) 잘 배울 수 있는지도 (블랙리스트를 통해) 많이 보게 된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는 '을'의 입장인 신입 노무사들이 블랙법인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B씨는 "노동법률 전문가로서 일을 하는데도 노동법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니 그런 행태에 대해 간접적으로 항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무법인들은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 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수습노무사 채용 면접 자리에서 지원 이유를 물었는데 '블랙리스트에 없어서'라는 답변을 들었다"며 "견제 받고 감시 받는 느낌이 든다"고 털어놨다.

문제없는 노무법인이 엉뚱한 오해 받기도

물론 신입 노무사들이 블랙리스트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니다. 주관적 평가나 감정적 표현이 담긴 대목도 있기 때문에 정제되지 않은 내용을 걸러서 읽는 경우가 많다. 신입 노무사 C씨는 "사실 블랙법인이라고 하는 게 평가하는 사람의 마음도 들어가 있다"며 "블랙법인에 취업한 동기들이 있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딱히 부당한 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실제 한 블랙리스트에는 '대표 성격 때문에 오래 못 버팀', '대표가 이상함'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기도 하다. 블랙리스트로 엉뚱한 누명을 쓴 노무법인도 있다. 성희롱 사건이 있었다는 이유로 한 노무법인이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알고 보니 다른 노무법인을 혼동한 것이었다.

신입 노무사들은 블랙리스트 외의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노무법인 실태를 자체 조사한 것이다. 26기 노무사 동기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수습노무사 처우나 수습처 실태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곳이 41.0%,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곳이 26.2%로 나타났다. 제수당(연장ㆍ야간ㆍ휴일근로에 따른 가산수당 등 기본급 외 지급되는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곳도 68.9%로 조사됐다. 다만, 이 설문 결과에는 조사 인원수와 응답자 수가 따로 적혀 있지 않았다. 따라서 공식적 지표로 활용하거나 인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노무사회 "수습노무사 처우 개선 위한 가이드라인 제작할 것"

최근 신입 노무사들 사이에서는 블랙리스트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기수가 밝혀지면 해당 기수 노무사 전체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에 추천해줄 만한 노무법인을 정리해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국공인노무사회는 블랙법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태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수습노무사와 노무법인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한 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습노무사 처우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가이드라인은 각 노무법인에 배포될 계획이다.

이미 유사한 사례가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해 3월 수습변호사 업무 내용과 강도, 급여 등 처우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은 수습변호사와 일반 변호사를 동등하게 처우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구체적인 사례도 제시한다. 예컨대 법률 관련 칼럼ㆍ논문이라고 하더라도 대필을 시키면 안 된다며 여러 예시를 소개하는 식이다.

소민안 노무사회 부회장은 "매년 비슷한 이유로 수습노무사가 나가고, 매년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법인들은 수습노무사가 문제라기보다 그 노무법인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며 "올해 노무사회 차원에서 수습노무사와 법인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대영 기자 kdy@elabor.co.kr